리언 월터 틸리지 지음 | 수잔 엘 로스 콜라주 | 배경내 옮김
국판 (148*210) | 112쪽 | 값 13,000원
개정판 1쇄 발행일 | 2022년 12월 30일
펴낸곳 | 바람의아이들
ISBN | 979-11-6210-199-5 [74800]
SET ISBN | 978-89-90878-00-7
리언 이야기
보스턴 글로브 혼북 논픽션 부문 수상!
<미국 도서관 협회>가 선정한 화제의 도서
“이 이야기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인종차별의 공포를 폭로하면서 대부분의 소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왜 이 미국 땅에서 우리 흑인들은 잘해 봤자 항상 2등이어야 하나요?
리언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흑인민권운동 이야기
15세기 아프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노예 무역이 시작된 이후,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노예무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으며 그 과정에서 죽거나 다친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노예제가 남긴 인종주의다. 1815년 유럽에서 노예무역이 금지된 이후에도 노예 시장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유색인종이 백인들에 비해 열등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은 뿌리깊이 자리잡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흑인들은 아직까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할뿐더러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만큼 위험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냥 길을 걷고 있던 어린 소년이 단지 아프리카계라는 이유로 경찰의 총격을 받는 세계는 그저 장난으로 자동차를 몰아 한 가정의 아버지를 죽게 만드는 세계와 얼마나 다른 것인가. 『리언 이야기』는 20세기 중반 흑인민권운동을 경험한 당사자의 경험담을 통해 진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언 할아버지는 독실한 신앙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자잘한 일거리를 찾아 돈벌이를 시작했으며, 어느 초등학교에서 30년 넘게 시설과 경비를 담당하며 살아온 노인이다. 평범하고 존엄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1936년생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리언은 어두운 색 피부를 타고난 탓에 어렸을 때부터 여러 고초를 겪는다. 리언의 어린 시절, 백인 농장주는 흑인 소작농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주지 않으며 상점에 가거나 버스를 탈 때도 흑인들은 언제나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드나들어야 한다. 백인 승객이 많으면 버스비도 돌려받지 못한 채 버스에서 내려야 하고, 백인 점원에서 값을 지불하고도 핫도그를 받지 못하면 그냥 돌아서야 한다. 백인 식수대에서 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매를 맞아 죽거나 백인 건달들에게 사냥감처럼 쫓기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KKK단이 버젓이 돌아다니며 흑인들이 사는 집을 공격하고 가장들은 목숨을 건 채 밤새 보초를 선다.
왜 미국 땅에서 흑인은 항상 2등이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리언의 부모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거야 원래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 거지. 흑인들은 원래 그렇게 살게끔 되어 있어. 우린 결코 백인과 동등해질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은 조금씩 나아져서 리언의 형제들은 학교에 다니며 글을 배우고 셈을 치르는 법을 익힌다. 또한 리언 또래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염려를 받으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부모님들이 음료수를 사는 안전한 노점상 대신 백인들이 드나드는 상점에 간다. 점원에게 봉변을 당하거나 돈을 뺏길 수도 있겠지만 금지되어 있는 곳에서 음료수를 산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흑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정해둔 자리에만 머무르다가는 아무것도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흑인들은 영영 차별을 받고 두려움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실제로 리언은 백인들의 심심풀이 내기에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하고 리언의 아버지는 시장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가 술취한 백인 청소년들의 습격을 받아 끝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백인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흑인들은 영혼이 없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고 가르치지만 그럴 리가.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
왜 우리가 아무 이유 없이 당하고 있어야 하죠?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리언 이야기』는 작가가 자녀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리언 할아버지의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구술 자료를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다.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나 KKK단의 폭력이 자행되던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내고 1950년대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행진에 발걸음을 보탰으며 마침내 시민의 권리를 인정받은 리언. 그는 평생 인간적으로 품위를 잃지 않았고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을 충실히 해냈으며 마침내 어엿한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받아 졸업식 연설까지 맡아 보게 된 인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지만 거기에는 미국 흑인의 역사가 담겨 있고 민권운동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대개 역사는 희망과 승리의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칫 개인의 고통과 두려움은 생략해버리기 쉽다. 리언 할아버지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흑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역사를 바꾸는 대열에 합류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백인들이 무자비하게 공격을 하고 경찰들은 흑인 시위대보다 백인 폭력배들을 보호하는 상황에서 행진에 나선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는 일이다. 흑인들은 팔다리에 고무튜브를 대고 머리에 신문이나 헝겊을 둘러쌀 뿐 맞서 싸울 수도 없다. 그러나 나이든 흑인들이 “행진에 갔다가는 두들겨 맞게 돌 거야.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니?”라고 물을 때 젊은 흑인들이 대답한다. “우리는 이미 두들겨 맞고 있잖아? 우리는 이미 죽어 가고 있다구요. 그러니 차라리 뭐라도 하다가, 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꿈틀대다가 두들겨 맞는 편이 더 나아요. 왜 우리가 아무 이유도 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하죠?” 결국 이런 마음들이 모여 흑인민권운동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또한 50년대 민권운동에 나선 흑인들은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았다. 흑인들처럼 차별을 받고 있던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가게 문을 열어 흑인 시위대들이 피할 수 있도록 돕거나 좋은 백인들이 시위대를 도시 밖으로 실어 나르는 에피소드는 뭉클하다. 시위대를 때리는 대신 어서 도망치라고 말해주는 백인 경찰도 존재했다. 리언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역사를 바꾸는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뜻과 마음과 사랑이 담겨 있는지 알려준다.
1997년 미국에서 출간된 『리언 이야기』은 그 시점에 시민들이 함께 이루어낸 밝고 따뜻한 변화에 대해 들려주지만 오늘날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누구나 같은 상점에 들어가 핫도그를 사고, 같은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선거에서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한다. 그러나 흑인들의 빈곤율이나 범죄율은 여전히 높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권력의 공격을 받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거리는 재난에 훨씬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언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모두는 존엄한 사람이고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결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