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르테 뮐러 글그림 | 윤혜정 옮김
변형판 215*280(mm) | 양장본 | 32쪽 | 16,800원
발행일 | 2024년 6월 15일
식탁을 굴러 도망친 감자
#인생 #삶의 의미 #정체성 #목표 #자아실현 #성장 #감자 #여행
감자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간을 배부르게 하는 게 감자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가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그때그때 발달을 이루고 성장하여 마침내 자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명인으로서 우리는 스스로를 관리하여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꼭 완수해야 할 과제가 있고, 단계마다 꼬박꼬박 치러야 할 일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쓸모를 가질까 골몰하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왜 살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지? 삶의 의미는 무엇이지?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답은 남들이 정해놓은 것일 때가 많다.
『식탁을 굴러 도망친 감자』는 바로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 그림책이다. 원제가 ‘감자와 삶의 의미Die Kartoffel und der Sinn des Lebens’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 감자가 살아가는 이유를 요리조리 궁리하는 이야기다. 감자에게 삶의 의미라…… 꽤나 웃기는 상황이지만 우리의 주인공 감자는 진지하다. 감자는 왜 세상에 존재할까? 바로바로 요리가 되기 위해서다. 감자튀김, 감자볶음, 감자샐러드, 감자수프, 맛있는 감자 요리가 되어 인간의 식량이 되는 것. 감자들은 이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고 인간에게 먹히는 것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감자의 쓸모가 바로 그것이니까. 하지만 꼭 그래야 할까?
삶의 의미란 동글동글 노란 감자가 가득 담긴 귀여운 그림책에서 다루기 너무 무거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감자 주제에 요리가 되는 것 말고 삶의 의미가 따로 있을 턱이 있나. 그리하여 먹히고 싶어 하지 않는 작은 감자에게는 비난이 쏟아진다. “인간을 배부르게 하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잖아!” “너도 우리랑 같이 수프 속에 들어가야 해.” 물론 작은 감자도 요리가 되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감자가 꼭 요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작은 감자는 그렇게 선언하고는 식탁에서 굴러떨어져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주어진 정답에 의문을 갖고 세상으로 굴러 나간 감자
『식탁을 굴러 도망친 감자』는 이야기와 메시지뿐 아니라 그림도 귀여운 그림책이다. 실제 감자 단면에 물감을 발라 찍는 방식으로 감자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 모양이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감자들은 저마다 작거나 크고, 길쭉하거나 넓적하고, 동그랗거나 찌그러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녹말 가루로 인해 생긴 무늬도 다채롭다. 우리는 감자가 다 똑같은 감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처럼 감자들은 모두 다르다. 각양각색의 감자가 저마다 다른 개체라면 다른 생각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수많은 감자들 중 하나쯤은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방랑자가 될 수도.
길을 떠난 작은 감자는 처음 만난 새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 “모르겠어. 나는 그냥 나무에 앉아서 노래해.” 새도 수프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하던 감자에게는 뜻밖의 대답이다. 아하, 그럴 수도 있구나. 그것도 좋은 삶이다! 감자는 이후에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 지렁이, 호박벌, 꽃 등 감자가 만난 친구들은 딱히 삶의 의미에 대해 고심해 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다들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간다. 지렁이는 흙을 파헤치고, 호박벌은 꽃가루를 옮기고, 향기로운 꽃은 꿀벌에게 꿀을 줄 수 있다. 거창한 목적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감자는 수프가 되지 않는 삶이 이렇게나 많은 데 감탄한다. 심지어 햇살 아래 누워 있던 돌은 “난 그냥 여기 있어. 그래도 멋지지 않아?” 하고 되묻는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삶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삶이다.
『식탁을 굴러 도망친 감자』는 삶의 의미를 찾아나선 작은 감자를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감자수프나 감자튀김이 되는 뻔한 삶을 거부하고 길을 떠난 감자에게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사회로부터 주어진 정답 대신 나만의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될지도.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속 감자가 엄청난 그 무엇이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작은 감자는 엄청난 부자가 되지도 못했고 엄청 유명한 연예인이나 권력자가 되지도 못했다. 다만 흙속에 파묻혀 고이 잠들었을 뿐. 초록 식물이 된 감자는 그제야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어떤 삶의 의미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이기도 하다. 게다가 감자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단지 식탁을 굴러 도망쳤을 뿐인데도 감자는 이처럼 굉장한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순한 질문에 담긴 어마어마한 세계. 이 귀여운 감자 그림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글_ 비르테 뮐러
1973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함부르크와 멕시코, 볼리비아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낭독회와 워크숍을 열고 있습니다. 직접 쓰고 그린 많은 그림책이 전 세계 12개국어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 태어난 아들 빌리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그림책 쓰기와 그림 그리기 외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축구 팀 FC 장크트 파울리와 뜨개질, 달리기, 딸기, 그리고 귀여운 동물입니다.
그림_ 윤혜정
독일에서 심리학과 독일어를 공부하고 지금은 독일 책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수잔네의 봄』 『린드버그 하늘을 나는 생쥐』 『우유 한 컵이 우리 집에 오기까지』 등을 우리말로 옮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