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시몽 그림 | 로랑스 부르기뇽 글 | 안의진 옮김
변형판 232*283(mm) | 32쪽 | 값 17,800원
발행일 | 2023년 06월 15일
펴낸곳 | 바람의아이들
ISBN | 979-11-6210-204-6 (74800) SET ISBN | 978-89-90878-09-0
원제 | Vieil éléphant
안녕, 코끼리
늙고 병든 코끼리가 가는 아름다운 숲
“걱정하지 마. 코끼리들은 저곳에서 행복하거든.”
삶이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누구나 죽고,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의미한다. 죽음을 소멸로 여기고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단한 삶을 끝마치고 안식에 들어가는 일이라 믿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것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는 하나가 아니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문학이나 예술이 다루는 것 중 가장 흔하고도 절실한 문제이자 그만큼 어려운 주제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린이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어린이가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건네기에는 너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나. 그러나 정말 그럴까? 죽음은 그저 슬픔과 고통이기만 한 것일까?
그림책 『안녕, 코끼리』의 원제는 Vieil éléphant(늙은 코끼리)로, 나이들어 눈도 침침하고 움직임도 빠릿빠릿하지 않은 커다란 코끼리가 주인공이다. 다행히도 코끼리에게는 모든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 같은 친구가 있으니 바로 작은 쥐다. 작고 어린 쥐와 커다랗고 늙은 코끼리는 같은 나무 아래 함께 살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작은 쥐는 코끼리가 안경을 잃어버리지 않게 줄을 꼬아 목에 걸어주고, 코끼리는 작은 쥐를 지켜준다. 작은 쥐를 등에 태우고 어디든 놀러다니는 코끼리에게 삶이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지. 삶이 이렇게 영원히 계속되어도 좋으련만 코끼리는 종종 너무나 피곤하다. 너무 오래 살았고, 그만큼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늙은 코끼리는 자신이 오래지 않아 떠나야 할 테고, 작은 쥐하고도 영영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홀로 남아야 할 작은 쥐는 코끼리처럼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언젠가 코끼리가 떠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이라고? 앞으로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던 작은 쥐 앞에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코끼리의 숲으로 가는 유일한 다리가 부서지고 끊어져 있었던 것. 덩치가 커다랗고 둔한 코끼리 혼자서는 다리를 고칠 수도 없고, 달리 건너갈 방도도 없다. 날쌔고 작은 쥐라면 다리를 이을 수 있겠지만 대체 왜 그래야 하지? 다리를 건너간 코끼리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던데. 그래서 작은 쥐는 온힘을 다해 소리친다. “나는 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랑 여기서 영원히 함께 살자!”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과 사랑,
성장과 돌봄에 대해
늙은 코끼리와 작은 쥐가 함께 사는 터전은 푸르른 잎과 알록달록한 열매, 맑은 물로 가득한 숲이다. 그곳에서는 얼굴이 까만 원숭이들이 나뭇가지를 오가고, 예쁜 새들이 사방에서 지저귀고, 코끼리와 작은 쥐가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호랑이가 있으며 신선한 과일도 얼마든지 따먹을 수 있다. 주름이 가득한 회색 코끼리도, 주둥이가 뾰족한 분홍 쥐도 생명력으로 가득한 숲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보라, 온갖 생명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예쁜 파스텔톤의 그림은 동물들이 살아가는 숲속을 낙원처럼 제시하지만, 코끼리는 자신이 가야 할 코끼리의 숲이 훨씬 더 아름답고 평온한 곳이라고 말한다. 다리를 건너간 코끼리들은 그곳에서 아주 행복하다고.
이제 공은 작은 쥐에게 넘어갔다. 사실 진짜 문제는 작은 쥐의 몫이다. 코끼리가 건너갈 수 없게 망가진 다리도, 코끼리가 떠난 후 홀로 꾸려나가야 할 삶도 작은 쥐가 결정할 일이다. 애써 모른 척 예전처럼 지내고 싶지만 코끼리는 하루하루 더 나이들어 가고 이제는 앞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잘 듣지 못한다. 잘 먹지도 못하고 끝없이 기침을 하는 코끼리를 위해 작은 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게다가 작은 쥐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작지 않다. 코끼리가 나이든 만큼 작은 쥐도 자랐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그곳에서 행복할 거라고 믿게 된 쥐는 마침내 다리를 잇기로 결심한다. 코끼리를 위해, 그리고 이제 코끼리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할 자신을 위해.
『안녕, 코끼리』는 죽음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편, 작은 쥐의 성장과 독립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한다. 작은 쥐는 처음 코끼리가 떠난다는 말에 두려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리를 고칠 만큼 튼튼하게 자란 작은 쥐는 그만큼 내면도 단단하게 자랐다. “너한테 의지해도 될 줄 알았다니까.” 늙은 코끼리의 다정한 말에는 작은 쥐의 성장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늙은 코끼리와 작은 쥐는 종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대등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나이 어린 쥐를 살뜰히 보호해주던 코끼리가 나이들자 이번에는 작은 쥐가 코끼리를 돌본다. 돌봄이란 언제나 주고받는 것이고 우리는 생애 주기의 어느 한 시절 반드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늙은 코끼리는 우리의 조부모나 부모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일 수도 있다. 예쁜 그림으로 가득한 이 그림책은 어쩌면 너무나 비통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마지막에 이르면, 코끼리와 쥐가 “다 잘될 거야.”라고 서로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에서, 홀로 남아 웅크리고 잠든 작은 쥐의 모습에서 삶이란 그렇게 지속되는 것임을 마땅히 받아들이게 된다. 작은 쥐가 그러했듯이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우리 모두가 더 깊이 삶을 누리며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녕, 코끼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과 사랑, 성장과 돌봄에 대해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짧은 이야기지만 오래 생각하게 하는 좋은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