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영 글.그림 | 변형판형 (230*230) | 44쪽 | 값 13,000원 | 발행일 2021년 3월 15일 | 펴낸곳 바람의아이들| ISBN 979-11-6210-103-2
파란모자
커다란 모자 속 외톨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파란모자가 숲속으로 달아난 까닭은?
어린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친구를 사귀고 또래 사회를 형성하며 차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엄마 아빠가 아이를 놀이터나 문화센터에 데리고 가서 친구를 만나게 해주는 것도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우리 아이가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어쩌나, 외톨이가 되어 슬퍼하면 어쩌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어쨌거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구가 많은 게 여러 모로 좋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사람들 무리에 섞여 잘 지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태생적으로 외향성이 낮은 아이라면 더더욱.
『파란모자』의 주인공은 커다란 파란색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다녀서 ‘파란모자’라고 불린다. 다리만 삐죽 나오는 어마어마하게 큰 모자라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 리 만무, 대화도 나눌 수 없고 이리저리 부딪치기만 하는 파란모자는 사람들에게 기피대상이 된다. 이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사람들이 파란 모자를 피하니 파란 모자도 사람들이 없는 곳만 찾아다닌다. 처음에는 모자 한 겹만큼의 벽이 생겼을 뿐이었지만 이제는 진짜 거리가 생기고, 파란모자는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그러기에 왜 처음부터 그런 모자를 쓰고 다녔느냐고 나무란다면 파란모자도 할 말이 있다. 파란모자는 사실 울퉁불퉁 삐뚤빼뚤 상당히 괴상하게 생겼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까 봐, 그래서 기절이라도 할까 봐 두렵고 겁이 났던 것이다. 파란모자는 모자 아래로 보이는 약간의 풍경에 위안을 받고 숲속에 들어가 힘겹게 모자를 벗는 것으로 만족하며 산다. 뭐 어쩌겠는가. 이것이 파란모자에게 주어진 삶이라면 받아들여야지.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파란모자가 점점 자라면서 커다란 모자가 꽉 끼기 시작한 것. 모자는 파란모자를 점점 조이고 누르고 팽창하다가 그만, 투두둑, 터져나가고 만다. 오, 이런!
여럿이라도, 혼자라도 다 괜찮아
새 출발을 앞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한 응원
파란모자는 작가가 싹이 난 감자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해낸 캐릭터다. 확실히 싹이 난 감자는 푸르뎅뎅하고 못생겼다. 게다가 감자 싹에는 독이 있다고 하니 꺼림칙할 만도 하다. 파란모자로서는 어차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바에야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 셈이다. 그런데 덩치가 커지면서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이 발생하고 만다. 본의 아니게 끔찍한 모습을 노출하고 말았으니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어리둥절한 파란모자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었을 뿐. “파란모자, 괜찮아?”
파란모자의 두려움과 불안에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파란모자가 모자 속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사람들은 약간 놀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 장만한 조그만 모자를 쓴 파란모자는 더 이상 쿵쿵 부딪치거나 비틀거리지 않으니 피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파란모자를 커다란 모자 속 작은 세상 안에 가둬둔 것은 무엇이었을까? 파란 모자는 필요 이상으로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걸까? 『파란모자』는 이른바 ‘아싸(아웃사이더)’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자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마다 잔뜩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걱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초에 이유가 무엇이었든 꽁꽁 싸맨 껍데기가 터져 나간 뒤 맞게 된 자유와 안정은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부딪쳐보라는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파란모자』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도 잊지 않는다. 파란모자가 모자 속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나름 자족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것. 발아래 풍경은 좁은 시야 안에서나마 파란모자를 위로해주고, 깊은 숲속에서 모자를 벗어던지고 느끼는 바람과 풀냄새는 너무나 생생하고 아름다웠으니 파란모자가 모자 속에서 어둡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자기 깜냥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면 그뿐이다. 이제 파란모자는 못생긴 얼굴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고 사람들 속에서도 느긋하게 걸을 수 있으니 더더욱 좋다.
『파란모자』는 우리 모두의 불안을 이해해 주고 다독여 주는 한편, 각자 자기 모습대로 살면 된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림책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감당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은 두려운 일이지만 상대도 그럴 거라고 이해한다면 용기를 내기가 좀더 수월해진다. 또 모든 사람이 ‘인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억지로 씩씩해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범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니까. 『파란 모자』는 새출발을 앞둔 모두가 읽으면 좋을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