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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판 (148*210mm) ㅣ 136쪽 ㅣ 값 7,800원 ㅣ 바람의아이들 펴냄

ISBN 978-89-90878-39-7 ㅣ2007년 3월 1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할아버지

  •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할아버지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는 나치의 친위대원들, 바르샤바 게토의 비참한 생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간 아우슈비츠 수용소, 다락방에 숨어 살던 안네 프랑크……. 제2차세계대전에서 유태인이 겪었던 수난을 이야기하자면 한이 없다.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서 왜 자꾸 그 일을 들춰내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유태인들의 참상을 이렇게까지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각자가 스스로에게 던져 봐야 할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인가? 너는 인간이 맞는가?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난처한 문제를 어떻게 던져줄 것인가. 천진하고 깨끗한 아이들에게 인류의 죄를 덮어씌워서는 안 되겠지만 아이들도 인류의 잘못과 한계에 대해 알 것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할아버지』도 한 노인의 삶을 통해 유태인 대학살의 참상과 잘못된 역사를 알려 준다.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데서부터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기까지, 열한 살 여자아이 레아가 들려주는 1인칭 서술은 무뚝뚝하고 괴팍한 노인에게 감춰진 진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이 빛을 발하는 것은 단순히 경악할 만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 아니라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따뜻한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레아의 1인칭 서술과 함께,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할아버지께’로 시작하는 편지글이 교차되면서 할아버지와 손녀의 끈끈한 사랑이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이로써 잘못된 역사 때문에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남자의 사연을 더 가슴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로부터 상처받은 할아버지와 친구 되기

    레아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배고픔, 구타, 추위, 고문, 학대, 강제 노동을 이겨내고 독하게 살아남은 건 가족들 때문이었으나, 아내와 어린 딸은 가스실에서 죽고 만다. 상심에 빠진 할아버지는 그 이후로 새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레아는 자신들과 함께 살러 왔으면서도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데다가 분위기를 망치러 드는 할아버지가 못마땅하다. 그런데도 엄마아빠는 할아버지가 고달픈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며 무조건 이해하라고 할 뿐이다. 온 가족이 폭군 할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하다니. 기가 막힌 레아는 할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레아와 할아버지가 벌이는 크고 작은 다툼은 둘 사이를 보다 가깝게 만들어 준다. 할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잃어버린 딸과 똑같이 닮은 레아에게 크나큰 애정을 느끼며 차츰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린 손녀와 농담도 하고 역성도 들어주면서 젊은 시절 잃어버린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을 되찾기까지 한다. 레아와 할아버지가 투닥거리며 싸우다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고 행복이 깃드는 것이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난 죽은 딸만 생각하구, 살아 있는 딸 생각은 안 해 줬으니까. 늘 뒤만 돌아다보며 살았던 거지. 알갰니? 그건 정말 부질없는 짓이더구나. 난 공항애서 처음 널 보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넌 바로 내가 잃은 딸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하면 안 돼, 그러면 얘까지도 빼앗아갈지 몰라. 너한태 고맙다구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구나. 미안하다, 래아야! 너두 알지? 난 별루 행복하개 살아 보질 못했어. 어려운 일이 참 많았지. 눈물에 계곡두 수없이 건너야 했구.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매말라 버리더구나. 딱딱하게 굳어 버렸지, 아주 딱딱하게. 그런대 내 인생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 거야. 내 마음을 바꿔 놓은 손녀가…….”-95쪽

     

    마침내 할아버지는 레아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슬픔과 고통을 털어놓는다.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평화와 안식을 얻는 것이다.

     

    세대를 거쳐 전달되어야 할 역사의 비극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유대 민족의 비극은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느껴지는 놀라움과 아픔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레아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무척 다정다감하고 부드럽고 편안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그 속에 담긴 할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사연까지도 아스라한 옛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친구들이 레아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얼마 안 있으면, 그 모든 개 백년 전쟁처럼 역사애 일부가 대어 버리겠지. 그때가 되면 증언하기애 너무 늦어. 이잰 너희들이 기억을 이어 가야 해. 너희 자식들한태두 우리가 겪은 일을 얘기해 주거라. 그러면 기억은 시대를 넘어 새대를 거쳐 전달될 거야.”-121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동료들이 차차 돌아가시게 되면 역사의 산 증인은 없어진다. 따라서 그들이 모두 떠나기 전에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 그리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또렷이 새겨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할 일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