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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도 춤을 추어요

힐데 헤이더크 후트 글·그림 | 김서정 옮김 변형판 (275*210) | 26| 14,000원 발행일 | 2022년 1월 31일 펴낸곳 | 바람의아이들 ISBN | 978-89-90878-09-0

돌멩이도 춤을 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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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멩이도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놀 수 있다!

    빙글빙글 춤추는 돌멩이들이 들려주는 뜻밖의 이야기

     

    어린이들은 세상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거는 데 선수다. 참새나 길고양이뿐 아니라 크레파스, 시계, 신호등 같은 것들도 아이의 눈에 띄는 순간 생명력을 얻는다. 장난감도 마찬가지.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때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 창조된다. 이때 나무블럭이나 고무찰흙처럼 단순할수록 더 좋은데 복잡한 조작법이 필요 없는 장난감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한껏 북돋워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돌멩이는 색깔과 모양도 다양하고 손으로 쥐었을 때 반질반질 단단한 질감도 좋아서 장난감으로 그만이다. 게다가 돌멩이 하나하나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심지어 돌멩이들은 춤도 출 수 있다! 믿지 못하겠다고? 힐데 헤이더크 후트의 돌멩이도 춤을 추어요는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장을 펼치면 화면을 가득 메운 돌멩이들이 있다. 크기도 들쑥날쑥, 모양도 가지가지, 알록달록 예쁜 색깔에 무늬도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흰색 소용돌이 무늬를 지닌 조그만 돌멩이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조그만 돌멩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커다란 돌멩이 옆에 슬쩍 붙어 있기도 하고, 다른 돌멩이들과 나란히나란히 줄을 서기도 하고, 돌멩이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갇혀 보기도 한다. 등치가 크다고 으스대는 뚱뚱한 돌멩이도 있지만 돌멩이들은 다들 사이가 좋다. 둥글게 모여서 모두들 웃고, 둘씩 짝을 지어 무도회도 연다. 그리고 실컷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이제 놀이터에는 빈자리가 자꾸만 늘어간다.

    그런데 이 돌멩이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재미난 대형을 만들고, 소용돌이 꼬마 돌멩이를 외톨이로 만들었다가 놀이터에 혼자 남겨두는 건 누구일까? 그림책에는 예쁜 돌멩이들만 가득하고, 사람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아는 어떤 아이는 울 줄도, 웃을 줄도 알아요. 반질반질한 돌멩이랑 노는 법도 알고요. 그 아이는 오늘 혼자 있어요. 요 동그란 돌멩이처럼요.”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다른 층위에서 아이 혼자 노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돌멩이를 줍고 모으고 갖고 놀며 이야기를 꾸며내는 건 물론 재미있는 놀이지만 이 아이는 왜 혼자 있을까? 놀이터에 혼자 남은 아이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물과 바람과 시간이 깎아 만든 돌멩이,

    그리고 혼자 놀면서 개인적 삶을 발견해 나가는 아이

    돌멩이가 춤을 추어요가 보여주는 따뜻한 성장의 풍경

     

    돌멩이 하나에는 지구의 역사가 통째로 들어 있다. 오랜 세월 쌓이고 눌려서 거대한 암반이 되고, 바위가 조각나고, 그 조각이 다시 물과 바람과 시간에 깎이고 깍여야 조그마한 돌멩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멩이의 다양한 색깔과 무늬는 까마득한 지질학의 흔적인 셈이다. 돌멩이도 춤을 추어요의 작가 힐데 헤이더크 후트는 돌멩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한편, 돌멩이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을 잘 살려내 생명력을 부여한다. 작가가 그려낸 돌멩이 하나하나는 주머니에 넣고 수시로 만지작거리고 싶을 만큼 예쁠뿐더러 진짜 살아 있는 것 같다.

    아동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에 의하면 어린아이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해 나가면서 현실감 있는 삶의 토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니 혼자 앉아 돌멩이를 이리저리 배치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갖고 논다는 건 유용한 놀이일 수 있다. 그림책이 어린아이에게 무언가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돌멩이를 갖고 노는 법에 대해 힌트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니캇의 말대로 어린아이가 홀로 있으면서 개인적 삶을 발견해나갈 때 중요한 건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그림책의 서술자는 혼자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어른이 분명하다. 아이가 혼자 노는 풍경이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마지막에 짠, 하고 나타난 마법 돌멩이에 주목해 보시라. 이 돌멩이는 과연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결국 다른 돌멩이들과 즐겁게 놀다 헤어지는 꼬마 돌멩이, 돌멩이를 갖고 노는 어린아이, 그 어린아이를 지켜보는 누군가(아마도 어른!)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서술 구조는 이 그림책의 중요한 메시지 자체가 된다. 그리고 돌멩이도 춤을 추어요는 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의 놀이와 성장과 삶이 하나가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엄마 옆에서 자기만의 놀이에 열심히 빠져 있는 아이만큼 어여쁜 존재가 또 있을까. 어느 순간, 아이는 자기가 혼자 놀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외로움과 쓸쓸함 또한 삶에서 배우고 소화해야 할 감정이며, 곧 어딘가에서 엄마가 나타나 마법 돌멩이를 하나 놔줄 게 분명하니까. 어린아이의 삶이란 이렇게 깊고 따뜻한 것이다. 모든 아기들과 그 엄마들이 이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 세상이 한층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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