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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가 달린다

국판 (148*210mm) ㅣ 172쪽 ㅣ 값 9,500원 ㅣ 바람의아이들 펴냄

ISBN 978-89-94475-00-4ㅣ2017년 8월 15일

표그가 달린다

  • 표지판 그림자가 되어 달리는 아이들의 시간

     

    아이들은 길에 생긴 작은 물웅덩이나 나뭇잎에 달라붙은 애벌레같이 하잘것없어 보이는 것들도 쉽게 지나치는 법이 없다. 웅덩이에 다가가 찰박찰박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로 애벌레를 쿡쿡 찔러보고는 한다. 숨바꼭질하는 술래처럼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찾았다!”고 외치듯,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내고 경험하는 것이 바로 놀이의 특징이다. 그렇지만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인간이 놀이를 하는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평안한 삶 속에서 여가의 느낌으로 놀이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삶이 힘들고 지쳐서 그 탈출구로 놀이를 찾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표그가 달린다』에 나오는 아이들은 후자다.
     

    『표그가 달린다』는 근육병으로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하동이와 당차고 눈치 빠른 차영이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잠들 때마다 표지판 그림자로 변하게 되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표그’는 ‘표지판 그림자’의 줄임말로, 저자의 놀랍도록 독특한 상상력과 독창성이 반영된 이름이기도 하다. 표그가 된 아이들은 다른 그림자에 몸을 힘껏 부딪쳐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하고 또 다른 표그 ‘으아’를 만나 신나게 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표그로 살아간다는 건, 몸이 불편하든 불편하지 않든, 여자든 남자든 구분 없이 모두가 똑같이 표그인 채로 자유롭게 놀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하동이는 표그가 되어 놀수록 조금씩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완전히 그림자가 되어 살고 싶어 한다. 자신을 돌보기 위해 아끼던 피아노까지 팔아버리고 희생하는 엄마를 상처 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동이는 이삿짐 트럭을 따라간 곳에서 아빠가 이삿짐을 옮기며 힘들게 일하는 것을 목격하고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표그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이상하게도 으아의 몸집이 점점 커지면서 아이들은 으아를 의심한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이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으아가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소리치며 표그들을 잡아채 자신의 몸에 척척 붙인 것이다. 심지어 으아는 친하게 지내던 하동이와 차영까지 잡으려고 쫓아와 아이들은 미친 듯이 달려 현실로 도망친다. 하지만 이대로 으아를 가만히 둘 수는 없는 법! 으아를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아이들은 우연히도 으아가 교통사고로 인해 혼수상태가 된 아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어른들에게 표그가 된 경험부터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다 함께 으아를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지금 여기서, 힘껏 살아 보려 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근육이 굳어가는 하동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차영,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아솔,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온 힘을 다하는 어른들까지……. 하나같이 각자의 위치에서 삶을 살아가는 데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삶이 특별히 암울하게 묘사되거나 슬픈 점이 강하게 내비쳐지지 않는 이유는, 톡톡 튀는 사이다처럼 재기발랄한 저자의 문체와 상상력 덕분이다. 저자는 특히 하동이와 차영, 아솔이 꿈과 현실의 중간 존재 쯤 되는 표그가 되어 마음껏 뛰어놀며 나름대로 삶을 견디는 방식을 무척 세련되게 드러내고 있다.

     

    살아간다는 건, 삶을 견디기만 하면 반은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창 뛰어놀며 즐거운 경험을 잔뜩 하는 것이 마땅한 아이들이 그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에서 아이들이 함께 온 힘을 다해 현실로 돌아오는 경험은 무척 중요하다.

     

    표지판 그림자가 되어 달리는 아이들의 시간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가족의 마음, 친구들과의 우정을 이야기하며 지켜야 할 삶을 발랄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작품의 굳센 에너지는 독자들이 삶에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갈 힘을 더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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