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글 | 천은실 그림 | 국판 (148*210) | 196쪽 | 값 12,000원 | 발행일 2021년 9월 27일 | 펴낸곳 바람의아이들 | ISBN 979-11-6210-117-9
일곱 모자 이야기
우리 동네에 빨간 모자가 살고 있다면?
빨간 모자에게 색색의 모자를 쓴 여섯 친구가 있다면!
왕자나 공주, 마녀, 바보, 가련한 의붓딸 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 옛이야기 중에서 ‘빨간모자’는 단연 인상적인 캐릭터다. 빨간 모자는 연약하고 순진무구한 어린 여자아이이지만 홀로 늑대에 맞서야 할 운명이다. 샤를 페로는 엄마 말 안 듣던 빨간 모자가 늑대한테 꿀꺽 잡아먹혀 버렸다고 겁을 주지만, 그림 형제는 사냥꾼이 나타나 늑대 배 속에 있던 빨간모자와 할머니를 구해주었다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빨간 모자가 자기 힘으로 또다른 늑대를 물리쳤으니 안심하라고 이야기해준다. 어떤 이야기든 어린 소녀가 홀로 제 앞에 닥친 위험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놀라울 수밖에. 물론 옛이야기 속 인물들이야 언제나 불가능한 일을 맞닥뜨리고 기적을 만나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바로 우리 동네에 빨간 모자가 살고 있다면?
김혜진의 『일곱 모자 이야기』에도 빨간 모자가 등장한다. 빨간 모자를 쓰고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긴 하지만 옛이야기 속 빨간 모자는 아니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다. 빨간 모자 옆에는 주황 모자, 초록 모자, 까만 모자, 파란 모자, 하얀 모자, 노란 모자 등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인 모자를 눌러쓴 친구들이 있다! 친구가 있다면 더더욱 힘없이 당하기 있기만 하지는 않을 터. 이 친구들은 함께 모자 더미를 헤치다가 신비한 동굴에 들어가 용을 만나고, 놀이터를 워터파크로 만들어 신나게 헤엄을 치다가 문어 괴물을 만나기도 한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학교와 도서관, 아이스바를 잔뜩 사 주는 할머니와 노란 옷을 입고 전동차를 타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있는 현실 세계이기도 하지만 희한한 물건들을 파는 마녀의 잡화점과 기이한 마카롱 가게가 있는 판타지 세계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하나도 놀랍지 않은 세계. 그 안에서 일곱 모자들을 신나게 뛰어놀고,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친구를 위해 안간힘을 써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해낸다.
옛이야기 속 빨간 모자가 혼자서 타박타박 걸어가던 어두운 숲이 위험과 유혹이 가득한 함정이었다면, 일곱 모자들이 와글와글 몰려다니며 고함치고 깔깔거리고 웃는 마을은 신나는 놀이공원 같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언제나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의 과잉보호에 힘들어하고, 어떤 아이는 친구에 대한 시샘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또 다른 아이는 남다른 신체 조건 때문에 우왕좌왕한다. 아이들은 성격도 모두 달라서 누구는 목소리가 크고 적극적이지만 누구는 항상 뒤쪽에서 고개만 끄덕끄덕한다. 다른 동네에서 온 노랑모자가 무리 주변을 기웃대다가 슬며시 합류하는 대목을 보면 각각의 친분 정도도 한결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문제를 헤쳐나갈 때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사랑이 배어 있다. 그래, 함께한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일이지.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건 이렇게 신나는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