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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판 | 168쪽 | 9,000원 | ISBN 978-89-94475-38-7|2013.09.10

정체

  • 뜻밖에 찾아온 잉여의 시간,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십대 아이들 대부분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삶이 분명해질 것이라 기대하겠지만 사실 만 열여덟, 열아홉 살은 열여섯, 열일곱과 다를 바가 없는 나이이다. 여전히 앞날은 불분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하지 않고, 지금 잘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불안한 상태. 그것은 대학에 입학하든 재수를 하든 마찬가지인데, 이 점은 표제작인 「정체」가 가장 잘 보여준다. 대학생으로서 남 보기에는 모범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주인공은 도서관에 가려고 나섰던 길에 지하철 정체 때문에 뜻밖에 ‘잉여’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전공책을 무릎에 올려두고 자신이 금방 늙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 가장 싱그럽고 활기차야 할 시기에 노인이 되는 악몽에 시달리다니. 그러나 가장 절정에 오른 청춘이란 그만큼 위태로운 것이기도 해서 쉽게 늙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젊음이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우연찮게 김밥 장수 아주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일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문득, ‘정체’가 두 가지 뜻을 가진 낱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정체’는 본래의 모습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헤매는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주인공이 우연히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은 『정체』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라고 할 만한데 「폭우」에서 보다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정체」에서 보았다시피, 열아홉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갈 곳을 몰라 헤매고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수생에게는 그런 방황조차도 호강으로 느껴진다. 폭우 속 버스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은 재수생인 ‘나’의 현재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버스 안에 머물러 있기도, 폭우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기도 망설여지는 상태. 더구나 뜻하지 않게 대학생으로 오해를 받았다가 모욕감을 느낀 ‘나’는 버스에서 내리고, 폭우 속에서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해 푸념하는 여학생에게 소리친다. “나는 재수생이라고!” 재수생이 누군가의 정체성의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폭발하듯 외치는 순간, 재수생이라는 신분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누군가 재수생이 뭐 어때서, 라고 말해준다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