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이 방패가 되어 줄 때, 인간은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 걸까?
어느 중학교 3학년 교실, 교사 일을 그만두기로 한 수학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시작한다. 수업 내용은 뜻밖에도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전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며 똑같이 비틀즈와 이소룡을 좋아하고 함께 만화책을 보던 친구. 늦둥이로 태어나 어머니에게 귀여움을 받고 수학을 좋아해서 우등생 금배지도 달고 다니던 기훈이는 중년에 이른 수학 선생님과 달리 여전히 열여섯 살이다. 오래전 광주에서 세상을 떠났으니까. 이야기는 어쩌다가 중학생 기훈이가 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에게 맞아 죽었는지, 그 일이 얼마나 황당하고 비극적이었는지 설명한다. 군인들이 책방 앞에서 자전거에 올라타는 어린 중학생에게 머리뼈가 바스러질 만큼 세차게 몽둥이를 휘두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몽둥이를 휘둘렀던 군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았으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은 참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명령과 상명하복의 규칙을 따랐을 뿐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을까?
5.18광주민주화운동 국가폭력 비상계엄 역사교육
이경혜
이야기란 어떤 영혼이 작가의 몸을 통로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으며 글을 씁니다.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쓴 글로는 소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그 녀석 덕분에』 『그들이 떨어뜨린 것』 『새똥』이 있고, 허난설헌과 허균의 시를 번안하고 해설을 붙인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할 말이 있다』, 일기 중독자에 대해 쓴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북유럽 신화를 새로이 쓴 『에다』 등의 에세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