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비밀이 들려요

안드레아 마투라나 |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올레아 그림 | 허지영 옮김

변형판 (170*250mm) | 52| 14,000

발행일 | 20221202

펴낸곳 | 바람의아이들

ISBN | 979-11-6210-197-1 [74800]

SET ISBN | 978-89-90878-09-0

비밀이 들려요

  • KBBY 2022 2회 한-멕시코 그림책 번역대회 수상작!

     

    유년 시절의 끝에서 말을 잃어버린 아이들,

    어둠의 문이 열리면 세상이 온통 캄캄해진다

     

    재잘재잘 떠들고, 기발한 생각에 들뜨고, 온 세상 만물과 친해지는 것은 어린이들의 특권이다. 어린아이들은 온 세상이 자신의 편이라 믿으며 그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어린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환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모든 삶은 곳곳에 돌부리나 웅덩이 같은 것들을 감추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둡고 축축한 현실을 대면하게 될지는 엄마아빠도, 그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의 맨얼굴을 보는 순간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어른들로서는 사춘기를 맞은 아이가 그냥 좀 점잖아진 것인지, 특별히 무슨 고민이 있는 건지, 혹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도대체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칠레 출신 작가의 멕시코 그림책 비밀이 들려요는 끝도 없이 재잘거리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아말리아가 마음속 비밀을 갖게 되면서 맞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세상 모든 만물에 이름을 붙여 주고 어떤 존재하고도 대화를 나눌 줄 알던 아말리아에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아주 짧은 순간, 수상쩍은 문을 잠깐 열었을 뿐인데 아말리아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어둠에 휩싸이고 만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말리아가 너무나 캄캄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맞닥뜨렸다는 것밖에는.

    아말리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야기를 꺼내놓고 말을 통해 고통스러운 상황을 통과해 보려고 한다. 선생님을 찾아가고, 친구에게 어렵사리 말을 건넨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말리아의 이야기는 전달되지 못한다. 이름 붙이는 데 천재적이던 아말리아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이름을 줄 수 없다. 까맣게 채워진 말풍선은 너무 무겁고 어두워서 어떻게 해도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이나 친구가 아말리아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랐던 것일지도. 결국 아말리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서랍 속에 꼭꼭 감춰 두기로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깊숙이 넣어두고 나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아말리아는 어둠으로 가득 찬 비밀 서랍을 갖게 된다.

     

     

     

    우리가 힘겹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 더

     

    재잘거리는 말재주와 즐거운 일상을 잃어버린 아말리아에게 세상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이제 아말리아는 뚱하고 딱딱한 표정을 지닌 채 사춘기를 지난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소년이 된 아말리아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 서랍 속 깜깜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누군가. 아말리아는 천천히 서랍을 열고 비밀을 꺼내 놓는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서랍이 텅 비어 가벼워질 때까지. 그렇게 아말리아는 또 한 번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세상에 비밀로 꽉 찬 서랍을 가진 아이가 아말리아뿐인 건 아니다. 이제 아말리아는 밝은 햇빛 아래 비밀을 꺼내어 놓고 사람들 앞에 서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글을 쓴다. 이를 통해 남을 돕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아말리아가 서랍 속에 감추어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비밀이 들려요에서는 예민한 십대 소녀의 비밀을 주제로 삼으면서도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아말리아가 문을 열고 맞닥뜨리는 것은 사춘기의 보편적인 우울함이나 현실 인식일 수도 있고, 쉽게 말할 수 없는 범죄 피해의 경험일 수도 있다. 이후 이야기 전개를 보면 좀더 구체적이고 사회의 공론화를 필요로 하는 일인 듯싶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독자의 논리적 상상에 맡겨도 좋겠다. 중요한 것은 비밀의 내용이 아니라 비밀과 비밀을 공유하는 구조 자체다. 문과 서랍은 비밀이 어떤 방식으로 찾아오고 은폐되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서랍은 발설하지 못한 말들로 꽉 차 터질 지경이고, 아말리아는 비밀을 이야기하고자 하지만 말풍선은 시커멓게 칠해진 채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란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운지.

    다행스럽게도 아말리아는 좋은 친구를 만나 비밀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아말리아는 이제 가뿐해진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무거운 비밀을 나누고 함께 짊어진다는 것은 곧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하고 진실을 쌓는 일이다. 우리에게 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고, 붓을 들어 글씨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아말리아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렇게 무거운 비밀을 짊어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랍을 비우고 나면 거기에는 진실뿐 아니라 엄청난 힘과 용기 또한 쌓인다. 그렇게 세상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비밀이 들려요는 비밀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사람들을 연결하면서 만들어내는 일련의 흐름들을 보여준다.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비밀을 갖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비밀은 너무 무겁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에게도 무거운 비밀로 가득 찬 서랍이 있다는 걸 아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비밀을 꺼내놓고 연대할 때 놀라운 일이 생긴다는 것도. 아이가 자라면서 만나는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심지어 가혹하겠지만 고통을 통과하며 얻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비밀이 들려요는 얼마간 추상적인 메시지를 다루면서도 놀랍도록 간명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통해 전달한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노라면 서랍을 마음껏 열어젖히고 가까운 친구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사춘기를 맞아 말수가 줄어든 아이들, 마음속에 불안하고 두려운 비밀을 간직한 아이들, 옆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은 아이들이 보면 좋을 그림책이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