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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에서 살아남기

김미애 글 | 이미진 그림 국판 (148*210) | 100| 12,000원 발행일 | 2022225일 펴낸곳 | 바람의아이들 ISBN | 979-11-6210-175-9

여덟 살에서 살아남기

  • 여덟 살, 초등학교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바야흐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물론 요즘 어린이들은 걷기도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거나 서너 해 유치원을 거치는 일이 일반적이라 단체 생활이나 학습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여덟 살이 된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리도 없다. 그러나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건 어엿한 학생이 되는 일이자 한 인간으로서 자율성을 인정받기 위해 출발선에 서는 일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을 주목하는 것은 이때야말로 아이들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이 진면목을 드러내는 최초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한 어린이가 새로운 학교,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낯선 세계 속에 놓인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상황들과 다르지 않다.

    김미애의 여덟 살에서 살아남기는 이제 막 초등 1학년이 된 어린이들을 통해 곤란하고 당황스러운 갖가지 사태에 직면한 아이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주목한다. 새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은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캐릭터를 양보해야 한다면?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함께 걷는 길이 왠지 허전하다면? 말하기 연극에서 주인공을 할 수 없어서 애가 탄다면? 공개수업에 참관하러 온 모르는 어른들이 나를 지켜보며 이러쿵저러쿵 참견을 한다면?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선 뜀틀이 너무나 무섭고 두렵다면? 모든 상황은 가볍다면 가볍고 별일 아니라면 별일 아닐 수 있겠지만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신중하다. 그리하여 중대한 갈림길 앞에서 주인공 어린이들은 단단히 마음먹고 주먹을 꽉 쥔 다음, 마침내 한 걸음을 내딛는다.

    빠르게 기다리기의 영웅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티라노사우르스 캐릭터로 치장한 멋쟁이 친구와 같이 놀고 싶어서 누구보다 빨리 학교 교문을 벗어나 기다리지만 티라노사우르스 성재는 언제나 바쁘고 영웅이에게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딱히 호감을 보이지 않는 일이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 그러므로 어른들이 짝지어준 친구가 아니라면 내가 직접 고른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해 봐야 한다. 영웅이가 성재를 기다리는 동안 영웅이 옆에 서서 사탕이나 초콜릿을 내미는 민혁이도 마찬가지고, 특공대 5에서 하마 역할을 양보하는 원준이도 마찬가지다. 다른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나를 조금 내려놓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옆에서 나만 바라보는 다른 친구가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여덟 살들은 조금씩 자기중심적 세계에서 밖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한다.

     

     

    주인공이거나 주인공이 아니거나

    여덟 살이 진짜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하여

     

    나도?의 민서가 같은 배역을 일곱 명이 나누어 맡아야 한다는 데 반발하는 것은 주인공은 한 사람이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우리 친척들 사이에서 언제나 주인공을 맡던 어린이가 학교에 가면, 거기에는 똑같이 평생(?) 주인공으로 살아온 아이들이 여럿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러나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계 속에서 주인공이 하나일 리 없을뿐더러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되어야만 근사한 것도 아니다. 욕심과 고집을 내려놓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 일만큼 필요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민서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그 무엇도 함께할 수 없을 테니까.

    민서가 언제 어디서든 돋보이고 싶어서 안달을 내는 어린이라면 끝났어요의 성준이는 정반대로 부끄럼 많고 소심한 어린이다. 평소라면 말을 이어 붙이는 꼬리 따기 놀이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텐데 공개 수업을 보러 온 어른들 때문에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성준이가 왜 우물쭈물하는지 알 턱이 없는 낯선 어른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참견을 해대고, 급기야 성준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초등학교 교실이라는 공적 공간에 놓인 어린이들은 때로는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아야 하며,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을 꾹 참아야 한다. 성준이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뒤늦게 나타난 엄마의 응원과 애정이 큰 역할을 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뭉클하다. 여덟 살은 여전히 어리고 도움이 필요한 나이다. 뒤돌아본 곳에 파이팅을 외쳐줄 어른이 있다면 여덟살의 첫걸음은 좀더 단단해질 것이다. 도망쳐에서 치우가 자신이 지닌 뜀틀 공포증을 인정하는 데 보건실 선생님의 거미 공포증이 계기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수줍어하거나 두려움에 떨거나 심통을 부리는 여덟 살 주인공들은 나이와 상관없는 우리 모두를 비쳐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여덟 살의 일상을 통해 평소에 눈여겨보지 못한 진짜 인생을 발견하게 된다. 여덟 살에서 살아남기는 초등 1학년 어린이들의 기쁨과 슬픔, 설렘과 두려움, 뿌듯함과 두려움 등등 다양한 감정들을 다섯 가지 연작 동화를 통해 펼쳐 놓는다. 1학년 2반 어린이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그때그때 주인공이 되었다가 조연이 되는 구성 자체도 여덟 살 어린이들이 익숙해져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셈이다. 어른들이 흘끔 바라본 어린이들의 삶이란 한없이 단순하고 그저 웃을 일들로만 가득하고 다들 비슷비슷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기울여 눈여겨보면 거기에는 그 어떤 복잡한 어른들보다 더 흥미진진한 삶이 놓여 있다. 우리가 여덟 살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여덟 살 어린이들과 그 어린이들의 가족, 그 어린이들의 삶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이 즐겁게 읽을 만한 책이다. (, 관심 있는 어른들이 주의할 점. 여덟 살 어린이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그리고 어엿한 초등학생인 여덟 살들에게는 마땅한 예의를 갖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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