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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테카

안나 니콜스카야 , 김혜란 그림, 김선영 옮김 | 국판 (148*210) | 263| 12,000원 | 발행일 20220513일 | 펴낸곳 바람의아이들 | ISBN 979-11-6210-179-7 (74800) SET ISBN 978-89-90878-15-1 | 원제 Папатека

파파테카

  • 내 마음대로 아빠를 고를 수 있다면?

    아빠를 대여해주는 수상한 도서관 파파테카

     

    삶은 불공평하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얼마나 갖고 태어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가와 계급, 성별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사는 동안 내내 삶의 질을 결정하겠지만, 어린이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엄마 아빠다. 왜 어떤 아이는 괜찮은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어떤 아이는 이상한 부모에게 고통 받으며 자라야 할까. 왜 우리 엄마 아빠는 옆집 아이의 엄마 아빠가 아닌가. 왜 하필 우리 엄마 아빠는 저렇게 생겨먹었을까. 이거야말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엄마 아빠는 자신의 기준에 맞춰 아이들을 훈육하려고 하는데 거꾸로 아이들의 기준에 맞게 엄마 아빠를 바꾸면 안 되나? 러시아 작가 안나 니콜스카야의 동화 파파테카는 바로 그 대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약 우리 아빠를 다른 아빠로 바꿀 수 있다면?

    천재 동물학자인 엄마가 갈라파고스에서 희귀 박쥐를 연구하는 동안 열 살 비챠를 돌보는 것은 아빠의 몫이다. 하지만 비챠는 쓸데없는 요구와 듣기 싫은 잔소리로 똘똘 뭉친 아빠가 너무나 싫다. 아빠는 인터넷 게임도 못 하게 하고 지식은 빛이요, 무지는 어둠이다!” 같은 설교만 늘어놓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하고 지루하다. 그러던 어느 날, 더더욱 참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아빠가 미용실 비용을 절약하겠다며 비챠의 머리를 쥐 파먹은 것처럼 깎아놓은 것. 그리하여 비 오는 저녁, 집을 뛰쳐나온 비챠는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하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이상한 건물이 있다. 묘하게 휘어진 데다 뾰족한 고딕 양식의 탑이 있는 건물. 어리둥절한 비챠 앞에 고마워해라벤자민 선생이라는 희한한 외모의 노인이 나와 그곳을 파파테카라고 소개한다.

    아빠(Папа, papa)와 도서관(библиотека, biblioteka)을 결합해 만든 파파테카는 약 4만 점의 컬렉션을 자랑하는데 그 컬렉션이라는 게 바로 석관 안에 잠들어 있는 아빠들이다. 다양한 외모와 직업, 성격을 지닌 가지각색의 아빠들 중 마음에 드는 아빠를 골라 가질 수 있다나? 대신 자신의 친아빠를 빌려줘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뭐 어떠랴. 외계인이 아빠를 먹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망설이던 비챠는 마침내 계약서에 서명하고 다른 아빠를 빌리기로 한다. 문제가 있다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좀처럼 고를 수가 없다는 것뿐. 밤새 뛰어다니던 비챠는 지친 나머지 아무나 가리키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놀랍게도 새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앞치마를 두르고 헤어롤을 만 패션모델 아빠가. 맙소사, 이게 꿈이야 생시야!

     

     

    바꾸고 바꾸고 바꾸어도 구관이 명관

    비챠는 단짝 친구에게 빼앗긴 친아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후 이야기는 비챠가 여러 아빠를 빌리고 반납하면서 겪는 뒤죽박죽 소동을 다룬다. 소식과 운동을 강요하며 자신을 형이라 부르게 하는 패션모델, 함께 게임을 하려고 데려왔지만 하루 종일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식사까지 챙겨달라고 윽박지르는 IT 전문가, 기똥차게 맛있는 음식을 대령하고 프라이팬을 박박 닦아놓으면서도 정작 아들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살림의 달인, 그리고 온 집 안을 체육관으로 꾸며 놓고 비챠에게 운동을 강요하는 가라테 검은 띠의 헬스 트레이너. 매번 고마워해라벤자민 선생을 조르고 달래서 새로운 아빠로 바꿔 오지만 실패, 실패, 실패. 어떤 아빠도 비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진짜 아빠를 제자리에 데려놔야겠다. 마침내 비차는 파파테카에 찾아가 친아빠를 돌려달라고 말하지만 고마워해라벤자민 선생은 정색을 하고 말한다. “네 아빠처럼 훌륭한 아빠들은 여기에 오래 누워 있지 않아.” 이미 누군가 비챠의 친아빠를 데려가 버렸다는 것.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건 친구나 연인처럼 타인끼리 맺어진 관계일 경우에나 해당된다. 가족은 멀리 옆에 없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비챠에게 좋은 음식과 멋진 경험을 주려고 했던 아빠는 얼마나 다정하고 좋은 아빠였나. 비챠의 아빠보다 더 나은 아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파파테카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은 단짝 친구가 비챠의 아빠를 데려간 것도 그래서이다. 이제 비챠는 친아빠를 돌려받기 위해 거짓말과 속임수, 주거 침입 등 온갖 위험한 일을 저지르며 아빠를 유괴한다. 좀처럼 비챠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와 함께 숲에서 산책을 하고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비챠의 마음은 슬픔과 미안함으로 가득 찬다. 그동안 이렇게 좋은 아빠를 몰라보다니. 다행스럽게도 비챠는 당차고 씩씩한 아이라 괴상한 도서관장 고마워해라벤자민 선생의 위협과 호통에도 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과연 아빠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파파테카』는 주인공의 솔직한 속마음과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상황, 아슬아슬한 모험이 쉴 새 없이 이어져 신나는 책읽기가 가능한데 읽다 보면 차츰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자신의 엄마 아빠가 과연 진짜 친부모인지, 저 멀리 다른 곳에 더 멋지고 성격 좋은 엄마 아빠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된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라고, 당근이나 시금치를 좀 더 먹으라고, 자기 전에 이를 닦으라고 닦달하는 건 엄마 아빠의 기본 값이고, 아이들은 당연히 그런 잔소리가 듣기 싫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로 엄마 아빠를 바꿔준다는 사람이 있다면 계약서에 급하게 서명하기 전 심호흡을 해 보자. 그리고 옆집 아이의 눈으로 우리 엄마 아빠의 장점을 찾아보자. 그러면 모든 게 달라 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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